명시 감상 6부
오세영... 편지
조은사람70
2014. 4. 11. 18:43
편지
오세영
나무가
꽃눈을 피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 그 뒤안길에서
홀로 서 있던 수국
그러나 시방 수국은 시나브로
지고 있다.
찢어진 편지지처럼
바람에 날리는 꽃잎
꽃이 진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친 나무가 마지막
연서를 띄운다는 것이다.
이 꽃잎 우표대신, 봉투에 부쳐 보내면
배달될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봄이 저무는 꽃 그늘 아래서
오늘은 이제 나도 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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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함을 알기에 더 소중해진 하루
지는 꽃 잎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서둔다.
옥석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흔한가?
수시로 색이 변하는 저 나무며 숲이며
잃어버리고,
내려 놓아야 할 때가 오면
그리하면 되는 것.
행여 시들까 염려하는 지금
근심하며 보내버리는 시간
아껴야 해
바닥에 수북이 떨어진 꽃 잎
딱 한 잎만
사랑이라 믿고
책장 사이 넣어두자.
오늘은 그리하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