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고형렬
따끔따끔한 탕 속에 들어가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앞에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사람은 지난 12월 전방에서 제대를 했다 대학에 떨어진 아이는 거울 앞에 앉아 다리 때를 밀고 있다 옆에서 아이 시원타 아이 시원타는 늙은이는 뼈가 녹는 모양이다 좋은 아침, 해가 나서 새벽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거리를 걸어갈 생각하니 즐겁다 욕탕 밖이 환하다(집은 봄처럼 창문을 활짝 열었겠지?) 천장 창 눈얼음이 햇살 이에 물린다 부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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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 찌릿한 냉기가
등짝을 타고 목덜미까지 오싹하게 오른다
콧잔등과 귀가 시린가 싶더니 볼따구니가 얼얼하다
냉기는 어깨와 팔뚝을 타고 손끝에 절절히 전해지고
종아리를 타고 발목과 발가락 끝까지 모든 말초신경에 전달된다.
이제 온 몸이 차다
이런 날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탕에
버석버석한 온 몸을 턱까지 푹 담그고
간질간질 녹이면 좋겠다.
떼루룩 떼루룩
눈두덩 타고 콧잔등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몹시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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