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가수는
You Light Up My Life 를 부른 Debby Boone.



중 2때... 종로에 살았는데... 종로 2가에 고 이종환 아저씨가 운영하던 쉘부르 라는 가게가 있었어.

토요일 3시부턴가 여기서 이종환의 디스크쇼 하면서 고 이종환 선생이 모았던 LD(Lazor Disc-뮤직비디오가 실린) 를 틀어줬거든.

그때야 뮤직 비디오를 볼 일이 없었지 뭐. 그래서 너무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거야.
왜냐하면 거긴 미성년자 출입금지...



1시부터 그 가게 앞에 죽치고 있었지. 마침 주방에서 일하는 형이 나오길래 그 형을 붙잡고 사정을 했지.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처음엔 절대 안된다고 했는데 계속 사정을 했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주방으로 가는 커튼이 있는데 그 커튼 뒤에서 숨어서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지.

신세계였지.


어느 날 보게 된 Debby Boone(데비 분)의 뮤직 비디오.
피아노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금발의 천사.

너무 보고 싶어서 그 후로 몇 달을 끙끙 앓았지.



정말 그녀를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더라고.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곧바로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


그러곤 시간이 30여년이 훌쩍 지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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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11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뭐였을까?

언제나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제일 좋아하던 나였다.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춰서 밴드를 한다는 건 이래저래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각자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쳐서

돈도 안되는 일을 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 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어떤 장르이든 공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보고 싶은 곳이다. 

공연의 메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내겐 그저 꿈의 무대였다.

스물 몇 살쯤... 아마도 기타를 들고 왔었겠지. 조용히 한 켠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불렀었지.

서른 되기 전 어느 가을에도 그해 겨울에도 이곳 마로니에 공원(문예회관 옆 마당) 을 뛰어다녔지.

누군가가 연주하고 있으면 그저 그럴 수 있다는게 부러웠겠지.

오늘 드디어 우리 밴드 식구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열기는 아주 뜨거웠고 연주는 아주 즐거웠다.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로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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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1학년 때였을까?

피아노 학원에서 준 거라며 작은 유리 컵에 든 행운목 토막을 들고 왔다.

그 후로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1미터쯤 자란 행운목은 커다란 화분에 옮겨져 있다.

 

어느 날, 행운목 꽃대가 불쑥 올라왔다. 물론 처음엔 꽃대인 줄도 몰랐다.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지, 거의 보름만에 꽃 망울이 하나 둘 맺히고 차츰차츰 꽃대도 자라 길이만 40cm가량 되었다.

그 꽃향기가 대단하다는데...

 

드디어 꽃이 폈다. 집안 가득 행운목 향기가 가득 찼다.

행운목은 오후 늦게 꽃이 열리기 시작하고 대단한 향기를 내뿜지만, 새벽이면 꽃망울을 모두 닫는다.

그 어마어마한 향기도 자취없이 사라진다. 참으로 신기하다.

 

그 생김새나 향기는 산세베리아 꽃과 유사하다. 물론 행운목 꽃이 훨씬 향이 진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라 종종 환기를 시켜야 한다.

꽃을 활짝 피워 향기를 펼쳐지고 다시 닫고 향기도 말끔히 지우는 신묘한 꽃잔치는 아쉽게도 4-5일만에 끝난다.

행운목 꽃은 그 생김새도 귀하고 본성이 귀한 꽃이라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된다.

드물고 귀한 잔치... 늘 감사하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한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이들의 바람과 기도,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29명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그 동안 어린 우리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에 좌절하고 이 땅의 어른임이 미안하고 슬펐다.

 

어린 아이들이 300명 넘게 희생된 이번 사건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선주, 선장, 선원들을 비롯한 관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선자들의 구조를 위해 총력을 쏟겠다던 해경, 총리와 대통령까지 어느 누구 하나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어른(?)들...
그들은 결코 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참화는 우리 사회가 가진 치부를 안팍으로 낱낱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부패할대로 부패한 이 땅의 관료와 정치인들의 경악할만한 - 아니 사람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 행태며,

배포한 보도자료 따위나 읽는 방송,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왜곡하기에 바쁜 언론과 기자들의 한심한 작태며,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 펴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고, 절망한 국민들이 차라리 떠나고 싶은 이 땅에

밝은 미래나 희망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 동화작가 분의 말씀이 주말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다고...

하지만 이 땅은,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아이들이 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국민들이 외면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있을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아이들이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대한민국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우리는 다 한가지쯤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간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상처의 본질은 대부분은 비슷비슷하다.
사는 동안 이리 저리 부딪히고 서로 상처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 삶의 모습이니 하나쯤 아픔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상처가 훨씬 깊고 아프고 크다고 느낀다. 제 상처가 고통스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건 그 사람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이 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그것도 욕심일지 모른다. 아주 작지만 분명히 욕심에 가깝다.

어쩌면 그나마 기대할 사람이 있으면 다행인 게다. 내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난 잘 살고 있는 게 맞다.

제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고 쓰다듬어 줄 사람이,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치유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남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누군가에게 나를 알아 달라고 내 아픔을 이해해달라고 내 상처를 만져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상대방의 아픔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고 나눌 수 있는 빈자리를 조금 마련해 두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
누군가를 믿는다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결국 상처를 극복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며, 사람들끼리 사랑을 나누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비록 작은 상흔이 남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렇게 사는 게다.
날씨도 아주 가끔은 흐리고 비가 오지만, 대부분은 맑고 화창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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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의 시간은 이 땅을 딛고 사는 누구에게나 참으로 가슴 아프고 슬프고 참담한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역시 그랬다. 제 정신을 차리고 일이라는 걸 손에 잡는데 꽤 힘이 들었다.
이번 세월호의 침몰은 사는 동안 언제든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재난, 사고 등의 참화와는 여러모로 많이 달랐다.

사고 후 하나 하나 알게 된 사고의 원인, 구조 과정, 언론의 보도와 국가의 역할, 책임자들의 책임있는 행동과 소통,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되는 것 하나 없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찬 바다에서 고통받다 죽어가고 말았고,

우리는 생중계되는 수많은 뉴스를 혼란 속에 가슴 치고 울며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더 가슴 아파했고 더 침통했던 것 같다.

이미 사고는 단 한명의 생존자 없이 마무리 되고 있고 겨우 시신 수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관료, 기득권자들, 위정자들의 경악할만한 행태들과 뿌리 깊은 관료주의의 병폐, 정치의 부재를 지켜봤고,

아무 것도 할 수없는 나머지 사람들 - 그냥 착하게 자기 역할을 하며, 제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 - 의 무기력함도 뼈져리게 느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 보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 또한 내 가족과 회사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내 몫을 하기 위해 제 자리에서 성실히 잘 살고 있다.

건강한 몸과 안정된 직업과 예쁜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 딸과 함께 잘 살고 있다.

집도 두 채 있고, 통장에 잔고도 제법 있으며,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중형차를 몰고 다니며

종종 여행을 다니고 사진 찍고 기타치고 아름다운 시절의 노래 부르며 남부럽지 않게 아주 잘 살고 있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 땅에서 아주 잘 살고 있는 우리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보고 있자니 죄스럽고 미안했다.
페이스북도 밴드도 카카오톡도 블로그도 모두 닫고 싶었다.

 

난 지금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부터 조금씩 바꿔가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나한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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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광화국 전 대통령이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가 향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1918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턴케이프주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졸업 후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며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남아공의 첫 흑인 법률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1952년부터 1990년까지 27년간 내란협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결국 남아공 백인정부는 국내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등으로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

1990년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를 합법조직으로 인정하게 된다.

 

19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와 인종차별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 Margaret Hilda Thatcher)
영국의 정치인, 전 영국 총리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

 

영국의 전 수상(1979~1990)으로 영국의 부활을 이끌었던 마가렛 대처 여사가 오늘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세계의 탑뉴스로 올랐다.

보수당 출신으로 철의 여인(The Iron Lady)로 불리며 12년동안 영국을 이끌었다.
정치적 과실이 어찌 없겠는가만, 그녀의 집권기 동안 영국은 여러면에서 확실히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난 정치인으로써의 그녀를 존중한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갖고, 자신과 당의 자존감과 명예를 위한 그녀의 굳건한 행보는 정치인으로써의 본보기임에 분명하다.

하찮은 개인의 영달과 제 주위 모리배들의 이익만을 위해 철새처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녀를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정치인의 'Honor'를 가슴에 지닌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람을 한 번 가져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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