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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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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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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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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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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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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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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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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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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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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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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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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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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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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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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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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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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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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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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글쓴이 : 못난이 원글보기
메모 :
[동영상] U-17 여자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 우승 시상식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926102237731

출처 :  [미디어다음] 스포츠 
글쓴이 : 미디어다음 원글보기
메모 :

 

 

 

 

 

뇌(腦)가 강해지는 비법

 

 

 

 

KIST의 이수영 교수는
뇌가 강해지는 비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비법이 어떤건지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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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연결시켜 기억하라

정보를 얻고 저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조합이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좋게 하려면
배우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주면 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이름을 외울 때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장소,
그 장소에서 들었던 음악 소리 등과 연결시켜보는 것이다.

새정보와 이미 알고 있던 정보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겨 또다른 정보가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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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양손을 사용하라

뇌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오른쪽 뇌와 왼쪽 뇌로 나눠져 있다.
신체로부터 전달되는 대부분의 정보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서로 교차돼 전달된다.

왼손이나 왼쪽다리에서 온 정보는 오른쪽 뇌로,
오른쪽 손에서 온 정보는 반대로 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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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사용한다면 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글씨를 쓸 때 오른손을 사용하더라도
칫솔질은 왼 손으로 하는 거다.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속에서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한쪽 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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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잠자기 직전에 공부하라

꿈은 아직까지 그 본질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동물 실험은 꿈이 우리가 전에 경험하거나
배운 것이나 남겨 둔 문제들을

다시 기억하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잠자기 전, 꿈꾸기 전에 외운 것이 더 잘 기억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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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인간의 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진화해왔다.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작용하도록 돼 있다.

뇌는 그래서 단순히 암기한 것보다는
이해한 것에 대해 특히 잘 기억한다.

뭔가를 배운다면 이것을 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지
뇌에게 잘 "설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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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오래 사귈수록 나쁜게 TV다

텔레비전을 오래 시청하면 뇌에 좋지 않다.
텔레비전은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줘 뇌가
그 정보를 스스로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보게 되면
뇌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 뇌가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얻고 처리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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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3 시간 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전을 켜지 말고 생활하보라.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겠지만, 얼마 지나면
전과는 다르게 머리가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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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일상적인 것에 반대하라

우리의 뇌는 변화를 즐긴다. 틀에 박힌 것은 싫어한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뇌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뇌는 일상적이고 변화가 없는 정보는
소음처럼 여기고 기억하지 않는다.
가령 여러 권의 책을동시에 읽는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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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책을 30분 동안 읽다가 이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교과서를 읽다가 시집이나 재미있는 잡지를 읽어본다.

이렇게 하면 뇌가 집중력을 잃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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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여행하라

여행은 뇌를 재충전하고 깨어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국적인 곳을 여행할 수록 풍부한 자극을 경험하게 돼 더욱 좋다.
여행은 뇌의 환경이 결정되는 12세 전후가 지나기 전에 할 수록 좋다.

새로운 장소나 다양한 인종,
이국적인 음식들을 접하면 뇌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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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새로운 것을 먹어라

늘 먹던 음식보다 한번도 먹지 못했던 음식,
예를 들어 인도나 태국음식 등에 도전해보자.

새로운 음식은 뇌에 새로운 자극을 줘
일상생활에 지쳐 있는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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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도전하고 배워라

뇌는 도전을 즐긴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거나 글을 써보거나
모형비행기를 조립하는 것 무엇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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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남들따라 하지 말라

뇌는 도전을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잘 따라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뇌가 배우고 기억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같아 지려 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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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30년 동안 무슨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할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은 그 일을 하라.
즐기면서 하는 일은 보상도 따른다.

글 : 카이스트 이수영 교수

출처 : 청송시창작아카데미
글쓴이 : 聽松 김송배 원글보기
메모 :

가루우유 ...



정범태, 우유배급, 서울 중구 만리동, 1955


미군이 나눠주는 가루우유를 받기 위해 냄비 하나씩 들고 줄을 서 있는 아이들.
그렇게 받아온 가루우유에 물을 붓고 온 가족이 나눠먹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소화가 잘 안 돼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우유를 데워서 먹는 집도 많았다.


해방의 순간 ...



현일영, 해방의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 1945


한민족은 1945년 꿈에도 그리던 광복의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자,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외세에 또 다시 흔들리게 된다.
어느 노신사가 흔드는 중절모 너머로 미국, 중화민국, 한국, 소련, 영국 등 각국의 국기들이 보인다.


광교의 빨래터 ...



김한용, 서울 광교부근, 1947-8


청계천 광교의 빨래터. 아낙들은 처덕처덕 빨래를 두드리면서 한바탕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국군 서울 입성 ...



임응식, 6·25, 국군입성-서울, 1950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 발발 석달 만에 서울을 수복한다.
계속 북으로 전진하던 국군은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은 3년이나 지속됐다. 한반도 역시  피폐해졌다.
사진을 찍은 故 임응식씨(1912~2001)는
1950년 인천상륙작전 보도반으로 종군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독도 ...
  


김한용, 독도, 1947~53


1953년 10월15일과 16일에 사진작가 김한용(81)씨는 한국산악회의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단과 함께 해군 905정을 타고 독도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한국산악회 회원들은 당시 독도의 동도에 일본인들이 박아 놓은 말뚝을 뽑아내는 작업을 했다.
위 사진은 김한용 씨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창경궁의 미군 ...
  


이형록, 미군, 서울 창경원, 1957


창경궁으로 이름을 복원한 예전의 창경원.
배불뚝이 미군을 바라보는 한국 여성들의 호기심 가득찬 표정이 재미있다.


소풍 가는 날 ...
  

 
안종칠, 소풍 가는 날, 서울 효자동, 1958


소풍 가는 길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까까머리 학생의 동그란 머리가 귀엽다.


한강의 얼음 ...
  



손규문, 채빙-서울 한강, 1958


냉장고가 거의 없던 시절,
겨울에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은 서울 시민의 음식을 보관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지게와 소녀 ...
  


정범태, 물지게와 소녀, 서울 현저동, 1960


마을 우물에서 식수를 퍼다 나르고 있는 사람들.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더 나갈 것 같은 여자아이가 물이 조금이라도 흐를까봐
조심스럽고 힘겹게 물을 나르고 있다.


가마니짜기 대회 ...
  


김운기, 가마니 짜기 대회, 1960년대

60년대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가마니 짜는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마니 짜기 대회에서 가장 빨리 촘촘하게 짠 우승자에게는 가전제품과 같은 상품이 주어지기도 했다.
사진은 충북 괴산에서 열린 가마니 짜기 대회.


월남 파병 ...
  

  
정범태, 파월, 서울 동대문운동장, 1965


월남 파병은 한국 국군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다.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총 81만 2853명을 파병했다.
월남 파병의 대가로 한국은 당시 미국에게서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차관공여를 약속 받았다.
아들을 전선으로 보내는 어머니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다.


자갈치 앞바다 ...
  



정광삼, 부산 자갈치 앞바다의 고기잡이, 1968


자갈치 앞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들의 긴 장대가 얼기설기 꼬여있다

 

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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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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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에도 꽃이 피누만요.
대나무는 꽃을 피운 다음에는
말라죽어버린답니다.
"산해경"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대나무는 60년만에
뿌리를 갈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은 다음 죽게 되고
죽은 다음 열매에서
다시 새로운 대나무가 자라나게 된다고 했거든요.

 

출처 : 엔돌핀이 있는마을
글쓴이 : 함평천지 원글보기
메모 :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이나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우린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최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닌텐도의 게임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윗분들'의 훈계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기 시작한 '유행어'기도 하다.
 
당사자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점에서 '우린 이런 거 왜 못만드냐'는 물음은 상당히 전복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 꼴이냐'고 묻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는 그가 몸담은 조직과 그 조직을 포함하고 국가 모두를 의미한다.
 
   
애플 사의 오랜 모토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 받는 애플의 저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훈이다. 위계적인 기업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생각이라면 특히 더.
ⓒ Apple
 
 
못 만드는 이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흔히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다. '이런 거 왜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다. 조직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묻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이런 질문을 태연히 던질 수 있게 하는 위계적 사회구조다. 위계 사회에서 '왜 못 만드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질타이고 추궁이며 명령이다. 여기서 자신의 책임은 빠져있다. (자기는 방법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봉건적 위계사회의 비극
 
애플이 동기가 된,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물음은 반성과 각성에 가까웠다. 왜 애플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혁신과 첨단기술의 대명사가 된 나라에서 말이다. 그 쟁쟁했던 소니, 도코모, 토요타의 일본에서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위크>가 '애플이 일제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크리스찬 캐릴 기자는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수직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에서는 반대가 불가능하다. 반대가 불가능한 곳에서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위계적 기업문화가 재계를 넘어 정치,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가 단일 기업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반대가 불가능하면 밖에서 반대를 해 주어야 한다. 국민이, 언론이, 대학이, 정부가 말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기업조직의 일부가 되고 나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회장님' 좋아하는 언론이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사회와 기업 모두에 해가 될 뿐이다.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국가 CEO'를 자임하거나, 기업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업으로서의 애플이 갖는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애플은 변함 없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 공개자료
 
애플과 인문학의 관계
 
현재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통폐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폐합'하고 (이런 '창의적 발상'이 가능한 나라에서 아이폰이 안 나온 게 놀라울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통폐합'하고, 대학 전공을 "사회 변화의 요구에 따라"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 하겠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노는 시간'을 없애고, '돈 안 되는 전공,' 즉 인문학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승인과 지지가 있다. 정부는 이런 '교육개혁'을 주도하면서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야심찬 "한국형 스티브 잡스 양성계획"도 나왔다. "탈락시스템에 따라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 10명 안팎의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선발할지 모르지만, 대단한 '스펙'을 갖춘 실력자들이 몰려들 게 틀림 없다(조롱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지원해도 탈락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스티브 잡스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는 두 골칫거리의 산물이니 말이다. 바로 '인문학'과 '노는 시간'이다.
 
지난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었다. 그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미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인문/예술/사회과학 프로그램 웹사이트. "위대한 사상이 세계를 바꾼다"는 표어가 보인다. 하프를 연주하는 사진 오른쪽에 "컴퓨터는 음악이론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음악과 컴퓨터 기술을 접목시킨 최신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 MIT
 
'미국식 교육'의 중심은 인문학
 
'미국식 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교육을 '돈 되는 실용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역과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뛰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첨단 기술연구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훌륭한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전통은 크게 두 축이 있다. 연구중심 종합대학과 학부 중심의 인문대학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종합 연구대학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라 불리는 학부 중심 인문대학에서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도 콜럼비아 대학으로 옮기기 전 '옥시덴탈 칼리지'라는 학부 인문대학을 다녔다. 비록 한 학기만에 그만 두기는 했으나,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 칼리지'도 학부 중심 인문대학이었다. 그는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수업을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는 '학교를 때려 치운 것'를 꼽았지만 말이다(게다가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 말을 했다).
 
미국 대학이 '리버럴 아츠'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커뮤니케이션(소통) 능력, 비판적이고 윤리적 사고,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
 
미국에서 인문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지식이나 실용적 기술'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싫어하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인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온 교육'을 성공 비결로 내세운 것이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 칼리지. 학부 중심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가르치는 미국적 전통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가운데 하나다. 스티브 잡스는 이 학교를 한 학기 동안 다닌 후 자퇴했다.
ⓒ 공개자료
인문학, 왜 중요한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실용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왜 '돈 안 되는' 교육이 대접을 받는 것일까?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돈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고전 교육'이다. 고전(classic)이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성과물을 말한다. 실무용 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변하지만,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적 기초가 있는 사람은 실무 지식도 쉽게 배운다. 쉽게 배울 뿐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 제대로 배울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을 투자에 비유한다고 하자.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지금 한국의 기업과 정부와 대학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실무적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장하는 '대안'은 죽어가는 인문학을 뿌리까지 없애고 그 자리에 단편적인 실용지식과 기술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인문학에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미래 경쟁력의 토대인 창의력까지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비판 능력은 '남과는 다른 생각,' 즉 창의력의 토대가 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윤리의식은 배려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와이어드>지는 2009년 6월호 표지기사를 통해 소셜 미디어 혁명을 다루면서 '신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협력과 공유 운동이 경제모델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어드>는 이 새 경제모델을 "신 신경제(New New Economy)"라고 이름 붙였다.
ⓒ Wired
 
경쟁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유치원생이 영어공부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자본주의는 경쟁체제이고, 경쟁을 권장해야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국가 지도자가 '선진 인류국가'와 '선진국 문턱'을 말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이런 무엄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젠장, 그 문턱은 길기도 하다…."
 
유치원 시절에 듣던 '선진국 문턱' 이야기를 중년이 다 되어서까지 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장담컨대, 내 생전에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관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선진국'은 다가서면 사라지는 신기루다. 당나귀 머리 앞에 달아놓은 당근. 주인을 태운 당나귀는 당근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지만, 죽는 날까지 당근을 입에 대지 못한다. 그 당근은 새 당나귀의 머리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 비관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경쟁교육'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쟁 교육은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을 배출하지 못한다. 한국식 경쟁 교육에서 앞서가는 '비결'은 빼앗고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리눅스, 위키피디아, 플리커, 앱스토어, 트위터,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보듯, 뉴미디어 시대에서는 '나눔'과 '배려'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와이어드>는 이처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신사회주의(New Socialism)'라 부른다. 내가 나누면 남도 나눌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하게 된다.
 
모든 것을 떠나서, 서로 밟고 밟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고,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아이폰을 왜 못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다간 '한국형 잡스'나 '선진 일류국가'보다 사회 붕괴가 먼저 찾아올 것 같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애플과 구글의 창의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구체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실리콘 밸리의 탈위계적 전통이 어떻게 뉴미디어 기업들 특유의 '장난기(playfulness)'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 유희 문화가 어떻게 소비자들을 사로잡는지 다룬다. 이 맥락에서 '잘 노는 것'이 왜 국가 경쟁력을 위해 중요한지를 말할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그래픽 인터페이스'처럼 쉽고 대중 친화적 기술과 '사악해지지 말자'는 윤리적 접근이 미국 뉴미디어 산업을 지배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본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와 기업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다룰 계획이다.
출처 : 한국어린이출판협의회
글쓴이 : 한솔수북(김병오) 원글보기
메모 :

***인생의 세 가지 후회***

 
  • ♡ 인생의 세 가지 후회 ♡

    ♣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 하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 고 합니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움켜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 지 못했고 베풀며살 지 못했을까? 참 어 리석게 살았구나.이 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랍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 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 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합니다.

    •  

       

         

      출처 : 신수동성당사목운영위원회
      글쓴이 : 안또니오 원글보기
      메모 :

       


       

      빈곤이 어떤 것인가?

      불과 30여년 전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풍요로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옛날 어린이들♠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어도 
      따스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 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 
      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었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쇠 
      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님 
       
       
      신문팔이, 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는 중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학교 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카락 많이들 태웠었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 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 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금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걷이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안고 동네 우물가로 
      설걷이를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걷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도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 껌팔이, 
      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읍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녀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 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 돌을 어깨에 맨 아이...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소먹이러 가고...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 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안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돌아가면서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인 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 
      (머큐롬)을 비치해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 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깎고 했지요. 부실한 기계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거지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 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뛰어 상대를 떨어뜨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 
      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쳐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 뛰나 훨훨...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어 ㅎ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차범근, 이회택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키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 특별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서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 많아 늘 배앓이하고..... 
      불과 3,40년전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언제부터 배 부르다고 이젠 음식 쓰레기가......
      예전엔 고기 한점 죽 한사발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햇엇는데..
      언제부터 물자가 이리도 풍부한지......
      양말이며 옷가지 몇번이고 뀌메어 입고 신엇는데 
      이젠 멀쩡한 옷들도 단지 유행지낫다고 버리니....
      호롱불에 기름 아까워 심지 나추엇고
      벽사이에 구멍내어 전구하나로 양쪽방 조명하여
       흐린 불빛에도 어머님은 바늘질하셧고 
      나무궤짝이나 밥상에서도 책읽고 글쓰고 햇엇는데
      이젠 방마다에 거실엔 몇개의 전구가 불 밣이니 지푸라기에서 바늘 찻을일 있는지....
      아주 조금씩만 아끼고 절약해요.
      그래서 남은것 있다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이 항상 가슴에 샘물처럼 흘럿으면...... 
      남이야 어찌하든 우리 님들만이라도........
      우리님들도 다 격엇을 시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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