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


                       신경림


새벽 안개에 떠밀려 봄바람에 취해서
갈 곳도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내리니 이곳은 소읍, 짙은 복사꽃 내음.
언제 한 번 살았던 곳일까,
눈에 익은 골목, 소음들도 낯설지 않고.
무엇이었을까,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낯익은 얼굴들은 내가 불러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복사꽃 내음 짙은 이곳은 소읍,
먼 나라에서 온 외톨이가 되어
거리를 휘청대다가
봄 햇살에 취해서 새싹 향기에 들떠서
다시 버스에 올라.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는가를.
쥐어보면 빈 손, 잊어버리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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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봄바람 났으면 좋겠더라.

올 봄에도 봄 꽃 구경도 변변히 못하고
세월만 그저 보냈다.


이제 봄 비 궂게 내릴테고

심술맞은 봄바람마저 닥치면
꽃잎은 다 떨어지고,
내 맘도 어디론가 흩어져
갈팡질팡 하다가
아른아른 멀어지고...

어른어른 늙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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