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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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새벽 서녘 하늘 한 가운데에
반쯤 남은 조각달이 콱 박혀있다.


매서운 겨울바람 닥칠게 두려워 창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 한 가운데를 뚫어지게 보다가
어제 떠나간 이와, 지난 달 어느 날 헤어지게 된 사람과
작년 이맘때 쯤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문득, 우리 삶에서 시간의 의미가 과연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중요하다는 시간의 사용법과 활용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우리의 헤아림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잠이 덜 깬 아내의 뒤척임에 퍼뜩 정신이 든다.
동녘 하늘도 곧 밝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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