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2009.10.26~12.31 LG아트센터)
( 화~금 저녁 8시 / 토 3시, 7시 / 일,공휴일 2시, 6시)
VIP 120,000 / R 100,000 / OP 90,000 / S 80,000 / A 50,000
제작 시점부터 많은 화제를 뿌렸던 '뮤지컬 영웅'을 보고 왔다.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 제작되었던 뮤지컬로 기대를 많이 모았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아내와 함께 본 회에도 빈 객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중근 의사 일대기 요약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마리아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그는 불의에 맞서고, 정의의 편에 서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던
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1905년 한일 협약이 조인되자, 그는 대한제국이 독립할 때까지 술을 끊기로 맹세하게 된다.
그 후로 전재산을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하고, 재정마련을 위해 석탄상을 운영하나
일본인의 방해로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국채보상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등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에 앞장서던 안중근은,
1907년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가 강제로 정미칠조약을 통해 황제를 폐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자,
북간도로 건너가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같은 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엄인섭, 김기룡과 의형제를 맺고 의거를 도모하던 그는 한국 최초의
해외 독립군 부대인 '대한 의군'이 창설되자, 총독 김두성, 대장 이범윤과 함께 참모중장으로 선출되어
두만강 지역에서 전쟁을 준비한다.
1908년 6월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회령 등지에서 수차례 의병전쟁을 치른다.
일본군의 습격으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다시 북간도로 돌아온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 수찬 등지를
돌며 교육, 조직활동을 벌인다.
1909년 엔치야에서 동지 열두 명과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단지동맹'으로 결의를 다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사 라는 신문사를 거점으로 활동을 모색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시찰 소식을 듣고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준비한다.
10월 26일 아침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이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다.
1910년 2월 7일 부터 12일까지 관동도독부 뤼순 법원에서 열린 여섯번의 공판에서 안중근은 이토의 죄악과
거사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진술하였으나, 결국 일제 사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옥중에서도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탈고하고, 사형 선고 후에도 '동양평화론'을 집필한다.
마침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32세로 사형이 집행된다.
하지만 그의 유해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어 서거 100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공연을 보고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무수히 사라져간 동지들의 피와
대한의 독립을 위해 단지(斷指)하는 젊은 청년들, 그 속에 안중근이 있다.
그들이 처했던 망국(亡國)의 울분, 안타까운 젊은 피와 눈물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혀오고 그 분노와 눈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공연 시작부터 중간 휴식, 막이 내리는 그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아팠다.
2천만 대한의 공적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조선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서른 한살의 대한제국의 군인
안중근 의사의 총격은 일본제국을 향한 대한제국의 경고였으며, 항일전쟁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그 후, 한일합방과 36년의 강점기를 거치며, 해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 청산되지 않고 있는 그 역사의 아픔을 우리는 고스란히 대물림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해방된지 55년만에 발간하는데도, 수많은 저항과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한술 더 떠
그 본의마저 퇴색시키기 위한 갖은 술책과 보도가 난무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게다가 그 친일 후손들이 이 나라의 대부분의 정계와 학계, 언론계와 재계의 중심인물들이며,
게다가 안중근 의사처럼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던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거나 심지어는 빨갱이로 몰려 피폐해진 삶을 살게되는 나라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참담한 일이 아닌가? 정신이 깨어있어야, 살아있어야, 바로서야 그 나라의 미래가 있다.
어쨌든 참 좋은 작품이었다. 공연이 올해 말까지로 얼마남지 않아 아쉽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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