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게

 

                  서정윤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오히려 너를 시들게 할 뿐,
너는 그저 논두렁 길가에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들꽃처럼 소리 소문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여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홀씨를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

10여년만에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친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30분이나 먼저 도착한 자리,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나타난 친구는
파뿌리같이 푸스럭거리고 성긴 머리에
마른 푸성귀처럼 바싹 마른 몸을 하고
빈 논바닥 바람맞고 선 허수아비 마냥 흔들흔들 다가왔다.


안타까움 반, 반가움 반 더해져서 코끝이 찡해졌다.
손을 잡으며 왜 이렇게 말랐냐고, 어디 아팠냐고 물었다.
힘없이 고개를 젓는 친구.


저녁을 먹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신에 대해 말문을 연 친구는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많이 덜어 감추고서야

조심스레 내게 들려주었다.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어
잡고 또 붙잡아 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후에야 서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참 오랜만에 웃었다고...


이제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
자주 연락하며 살자고 인사를 건냈다.
비 오는데 얼른 들어가라고 휘젓는 친구의 손등이 자꾸만 흐려진다.


어둠속으로 까마득히 멀어지는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불빛이 다 사라지고도 한참동안...


변덕스런 하늘...
후둑후둑 떨어지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광섭...비 개인 여름 아침  (0) 2010.07.21
임길택... 비 오는 날에  (0) 2010.07.19
허영자... 녹음(綠陰)  (0) 2010.07.08
강미영... 늙은 첼로의 레퀴엠   (0) 2010.07.05
최옥... 장마  (0) 2010.07.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