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

 

                                 김남극

 

간장 냄새에 발이 푹 빠지는
장독대 뒤
꽤나무꽃 피었다.
살결이 쉽게 짓물러
미간을 스치는 바람에도 떨어져
막 잎 내미는 무잔대
잔 손 속으로 포갰다.
댓돌에 앉아
단지를 열고 고추장을 푸는 어머니
근육도 말라붙은 종아리를 보다가
청춘의 향기와 빛깔이 뒤란 가득 술렁이던 시절과
한순간 지는 꽃잎 따라
울컥 울음이 나던 시절을 생각하다가
집안에 들어와
오래된 횃댓보를 펼쳤다.
매화나무는 근육질인데
꽃은 엉성하고
그 위에
어슬픈 꾀꼬리 한 마리
가래 섞인 울음소리 들린다.
다시 결 따라 접어놓고
엉덩이가 시린 방바닥에 누웠다.

봄햇살은 마당가에서 낄낄거리며 자기들끼리 놀다가
슬레트 지붕 위로 올라간다 .
어둠이 문지방에 들었다.
꽤나무꽃 밤새 꿈 속에서
횃댓보 가지런히 결 따라 진다.
수(繡)마다 보풀 인다
마음을 건너 어머니에게로 가는
부풀이는 수(繡) 자국들

 

 

봄날 2

                                   김남극

 

햇살 깔깔대며 양철지붕을 구르는 봄날
할머니들 식은 밥덩이처럼 모여 앉아 감자 눈 딴다.
건네는 말소리에선 가끔
지난 겨울 강가 얼음이 천둥처럼 갈라지던 소리들
연일 내리던 눈발이 뒤란을 서성이던 소리들
솔가지 위 눈덩이 사소한 바람에 쏟아지듯
수화기에서 쏟아지던 자식들 물기 묻은 목소리들
비명 길게 끌며 골짜기 끝을 지나 산으로 치달리던
설해목 쓰러지는 소리들, 그렇게 마른 별처럼

진 노인네들 요령소리
이따금 황사 따라 감감하면서 가슴 막히게
두런두런

초승달 양철지붕에 내려 앉히는 소리 속에서
감자 씨눈 트는 소리
잔설 그림자 기웃거리는 개울물 소리 속에서
피라미 지느러미 터는 소리
소리가 소리를 끌고
또 소리를 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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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내면의 풍경화 시인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김남극님의 시입니다.
따스하고 온화한 봄날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어느 한녘이 서늘하고 소슬함을,

우리의 삶 어느 한 녘이 언제나 그러함을,

어찌 이리 잘 그려낼 수 있을까요?

강원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을 보니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어느 숲길을

터벅터벅 걷던 내 뒷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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