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신용선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사랑인 것을


그대를 잊기 위하여
살갗에 풀물이 밴 야영의 생애를
이끌고
바닥에 푸른 물이 고인 아득히 오래된
마을,
그대의 귀엣말보다 더 낮은 소리의 세상으로
내려가기도 했었네.


제 울음 다 울고 다른 울음 바라보는
아무 그리움도 더는 없는
키 큰 갈대가 되어
귀 기울여 바람소리 아득히 들리는
먼 강변에
홀로
서 있기도 했었네.

.......................................


억새

                          신용선


간결해지기 위해
뼈에 가깝도록 몸을 말리는
억새처럼


저절로 알아먹었던 유년의
말 몇 마디만 남기고
다 버리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갈기가 되어
달리다가 일어나고


달빛이 들면 있지도 않은 이별을 지어
손을 흔드는
억새처럼


속없이 살고 싶습니다.
눈물로도 와해되지 않는
세상의 일들 잊고

.........................................................................

말과 소리, 글과 눈, 가슴과 눈물, 그리고 바람...

스러져 누울 때까지 홀로 서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을

그 누구인들 벗어날 수 있을까마는

가벼이 보내려 애 씀을 '삶'이라 할 밖에...

생전에 단 한번 마주치지 못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발자취를,

그의 흥얼거림을 고스란히 뒤따라 가며 듣고 있다.

이 가을... 저 강변 어딘가에서, 저 산모퉁이를 돌면

다시 그의 노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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