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깔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별 생각없이 내뱉은 한마디의 말,
무심코 한 행동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혹은 상처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언젠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로 다시는
연락할 수 없게 된 친구가 생각납니다.
친구들과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 친구는 그 농담을 단순히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우리는 그걸 전혀 몰랐었고,
그래도 어릴적부터 친했던 친구라고
그래서 잘 안다고...
그냥 별 일 아니라고...
연락처도 바꾸고 연락도 않는 그 친구를
그 뒤로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만나면 소주 한 잔이라도 기울이며
'미안했다, 친구야'
하며 사과라도 해야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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