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진 선생님...


이제 선생님을 부를 때의 호칭이 되어버린 '여사'를 붙이기가 부끄럽다.


여사의 뜻을 보니,

1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2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주로 성명 아래 붙여 쓴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선생님의 요즘 근황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끄럽기만 하다.


일인창무극의 대가이신 선생의 말년의 삶을 보면, 이미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전통 문화인들의

삶의 질곡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하다.

 

 

선생의 창무극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애환을 쓰다듬어주었고,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감싸주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소리에 눈시울 붉혔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선생의 춤사위에 위로받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연기에 해원했던가?

 

  

 

20년전쯤, 한여름 뙤악볕 아래서 광주 도청 정문 앞에서
두터운 진압복 껴입고 헬멧까지 눌러 쓰고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꼼짝하지 못하고 방패를 짚고 서 있던 내게
하얀 한복 입은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바로 공옥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손에 들고 계시던 손수건으로 내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주셨다.
그 따스한 손길과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신 선생님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엉겁결에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했다.


하기사 그 때,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으랴마는
자신을 알아보는 젊은이가 대견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모양새가 처량해서 였는지,
선생님은 나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 주셨다.


덕분에 근무가 끝나기도 전에 교대해서 뒷마당에서 가혹한 얼차려를 받아야 했지만,
선생님의 그 따스한 손길과 눈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광주... 그 슬픈 한 장면, 한 장면을 나는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의 선생님의 소리 한마디, 동작 하나, 눈짓 한 번...
모두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주셔야 할텐데...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할텐데...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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