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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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몇 살의 어린 소년에게 그의 시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줄 한 줄이 모두 감동이었다.

그의 노래에 취해 난 반드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후로 스물 몇 해가 더 지났다.


그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소년은 세상을
젊은 시절 요절한 시인보다 더 오래 살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며,
그의 노래를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어느 흐린 가을 날,
한 천재 시인의 글을 다시 읽는다.
다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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