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유순예


무릎 꿇지 않아도 됩니다
서 계신 그 곳에서
눈길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두 번 스친 인연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만나고 만날 것입니다
지금처럼 통하는 날, 주저앉아
그대 입김 내가 마시고
내 향기 그대가 마실 것입니다
부허한 기운 거나하게 취하거든
한철만 허락받은 삶도 뽐낼만하더라고
그대 머물다 간 자리에
몇 글자 써서 흙으로 덮어 두겠습니다.

....................................................

사랑은 마주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마주하며 느끼고, 통하고, 취하면서 사랑이 익어간다.


사랑은 참고, 마르고, 멍들고, 아파하며 식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면
사랑은 깨진다.
그리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을 맹서(盟誓)하면
사랑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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