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女僧)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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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로 징용 끌려간 어머니의 작은 삼촌은
푸른 봄배추같은 젊은 부인과 두 아이를 너무도 그리워하다가
고압선에 붙어 재가 되어 그 곳에 뿌려졌다.
대가 댁의 종손인 할머니의 하나뿐인 오빠는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산골짝에서 총살당해
켜켜이 쌓인 시체더미에 발목을 묻어두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16살 학도병으로 간 어머니의 꽃다운 오빠는
누렇게 벼가 자란 개성 어느 논바닥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이름 석자만 씌어진 사망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왔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후로 그 자손들의 대부분은 빨간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가난과 함께 별 볼일 없이 살아야 했다.
그 시절을 살아 낸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께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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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취: 참취나물.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금덤판: 금점판(金店)판. 금광의 일터.
*섶 벌: 울타리 옆에 놓아치는 벌통에서 꿀을 따 모으려고 분주히 드나드는 재래종 꿀벌.
*머리오리: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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