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강영은


오늘처럼 한 남자가 피어나는 건
구름이 제 먼저 와 담장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한 것도 기다린 것도 아닌데,
담쟁이 넝쿨이 자꾸 손을 뻗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한 남자를 적시고 싶은 건
하늘이 제 먼저 와 호수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한 것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그렁한 물빛이 자꾸 깊어지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한 남자 곁에 눕고 싶은 건
햇살이 제 먼저 와 이불을 펴기 때문이다

 
사랑한 것도 기다린 것도 아닌데,
후박나무 너른 등이 자꾸 얇아지기 때문이다

..................................................................

사랑한 것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계절은 그렇게 찾아오고
다시 지나가고...

 

사랑도 그렇게 다가오고
다시 멀어지고...

 

지금도 가을은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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