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강정식
줄무늬가 선명한 푸른 수박
칼을 대기가 무섭게 ‘쩍’ 갈라져
이내 붉은 속살을 드러낸다
아내는 호기 있게
‘푹푹’ 숟갈로 퍼내어 화채를 만들고
아이들 달려들어
대중없이 파먹는다. 금세
큰 박 두 쪽에는, 가장자리에
붉은 속살 듬성듬성
거칠게 일어서고
검은 씨 몇 개, 끈적이는 붉은 과즙
탁자 위에 흥건하다
내 속처럼 갈라져 파헤쳐진 박
아직도 냉기가 남아서
등줄기에 흐르던 땀
선득하게 잦아들고
창밖에 높이 걸린 새털구름
수박 물이 흠뻑 들었다
............................................................
아직 한 여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초저녁,
어른 머리통보다 큰 수박 한 덩이 사서 들고
그냥 올라가기도 만만치 않은 경사진 길을
땀 뻘뻘 흘리며 허위허위 올라간다.
수박 한 덩이도 못 들고 가겠냐고 선뜻 나섰던
내 호기가 후회로 바뀔 즈음,
전화기 너머로
한껏 높아진 아이들 목소리가
벌겋게 단 내 귓전에
수박 씨마냥 콕콕 박힌다.
언제 와, 빨리 와
빨리 보고 싶은 게
수박인지 나인지는 알 게 뭐냐
그래 금방 간다.
수박 한 덩이 가뿐히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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