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만나는 일보다
헤어지는 일이
아무래도 잦아졌다.
만나는 것은 갈수록 어렵고,
헤어짐에도 많이 무뎌졌다.
소중하지 않았던 만남이 있었던가?
또 어떤 헤어짐이 그리 사소하였던가?
그 많던 꽃
다 지고,
초록 세상이 되는데,
겨우 보름 남짓 걸렸다.
이 초록은 얼마나 호사를 누리려는지...
오늘은 그 흔하던 꽃 잎을 눈씻고 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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