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술병이 잔에다 술을 따르며 비어가듯,

원죄에 얽힌 인연으로 

어른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봄 날,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는 아버지의 소리를 듣습니다.

 

어느 순간,

비우던 소주잔에서 인생의 쓴내가 물씬 풍길 때,

아버지,

당신의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한 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후두두둑...

빗소리 들이치는 홑겹 양철 지붕 아래에

깊은 밤 잠 못 이룬 채

세 아이를 줄줄이 눕혀 놓고

소주 한 병을 한 잔 한 잔 따라 비우며 

부스럭대던 그 소리가

 

지금.

꽃 비 날리는 저 창 밖 어딘가에서

허공을 맴돌아 자꾸만

자꾸만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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