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찻집

 

                             김승봉            


누구나 바다 하나씩 가지고 산다.
가까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귀머거리) 찻집에 앉아
옛사랑을 그리며
반쯤 식어버린 차를 마신다.

파도는 유리창 너머에서 뒤척거리고
찻집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오래된 시집을 읽고 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찻집보다는 선술집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주인은 시집을 덮고,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확트인 유리창 곁에
그 사내들의 자리를 권하고
다시 시집을 펼쳐든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들어간다.
주인은 주문을 받지도 않고
사내들은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떠나가고
주인만 홀로 빈 찻집에 남게 될 것이다.

온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지쳐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그 바닷가 찻집에 파도처럼 왔다가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

주인은 마음으로 시집을 읽고
사내들은 말없이 빈 바다를 마신다.
 
펄펄 끓어오르던 온기마저 서서히 식어갈 때
옛사랑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내 손에 전해져 오는 냉기와
콧속으로 파고드는 짭짤한 바다의 냄새,
내 마음 역시 그들과 함께
빈 바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바닷가 빈 언덕에서 찻집을 하는
주인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껴안을 수 없는 사랑 하나씩 안고 산다는 것을

............................................................

 

 

'명시 감상 1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성우... 비 온 뒤에  (0) 2008.05.14
공광규 ... 소주병  (0) 2008.05.08
김기택... 봄날  (0) 2008.05.06
김선굉...그리움의 시, 아리랑  (0) 2008.04.28
김소엽...눈꽃  (0) 2008.02.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