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늦은 밤,
집으로 가는 언덕을 비척비척 올라가다

언덕 마루 너머

하늘 가운데 쾅! 박혀있는

반달과 눈이 마주쳤다.


달이 언제부터 저 자리에 걸려 있었을까?


달이 무척 가깝게 보이고,

입가에 살짝 스친 미소가 막 지나친 뒷 골목으로

사사삭 자취를 감춘다.

 

파아란 바람이
땀이 살짝 밴 등짝을 민다.
아무것도 못 걸친 팔뚝에 얇은 소름이 돋는다.


얼른 들어가야하는데,

오늘은 유난히
땅바닥이 조금씩 흔들리고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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