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涯月)에서


                                   이대흠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고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옴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옵니다 항구에는 지친 배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울어댑니다 살 그리운 몸은 불 닿은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집니다 먼 곳에서 온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됩니다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어둠에 눅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오늘도 마음 밖을 다니는 발걸음만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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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용서할 수 없는 이에 대한 연민...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서글픔...


창문에 오롯이 매달린 물방울이
손 닿는 순간 주루룩 흘러내린다.

님은 먼 곳에


                       이대흠


미칠 것 같은 날 꽃 피어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봄날
세상의 가시들이 다 내게로 향하는 것 같은
이 황홀함
내 안의 가지들엔 물 오르지 않고
나는 내 삶을 너무 둥글게 만들었네
오래된 노래들이 거리를 흘러
나는 되도록 먼 길을 돌아서
그대에게 가네 그대는 없고 나무들
저 검은 몸 속에 어떻게
저리 희고 푸른 색들을
숨겨 두었을까
봄날은 깊어 그대 멀리 있는 나는
알겠네 지난 날 그대의
껍질만 보아온 것을
...................................................................

진작에 이 향그런 흙내음을,
진한 봄 꽃 향기를 마음껏 맡아보았더라면,
제겨 딛고 거두기도 힘들게 지친 발걸음 옮겨 옮겨
그 먼 길을 비틀거리고 헤메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저토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으면,
화려한 꽃 잔치에
넉넉한 마음자락 휘날리며
한바탕 춤이라도 어울리게 추어보았을 것이다.


내 속에 아무도 없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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