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김지하


지나가는 걸 붙들 순 없다
별이 뜨길래
밤하늘 쳐다보고
서편으로 달이 지길래
서편을 노을마다 뛰는 가슴으로
미리 향했던 때가 지나간다

 
때론 국밥집
때론 앉은뱅이 악사를 찾아
공연히 장터 헤매는 요즈음
외마디 기인
비명이 나를 뺏던 그때마저
지나간다 지나간다

 
조금 낮은 가을바람에도
가죽장갑을 끼는 요즈음
나 없이
내가 나를 생각던 때는
훨씬 지나 저기 달아난다

 
속으로 묻건대
무엇이 또 남아
언제 나를 또 지나갈까

 
지나가는 걸
스스로 지나칠 일만 남았다.
........................................

시가
내 일상이 되고
힘이 되었다.

 

아직 읽지 못한
천 편의 시가 남았다.

 

내게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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