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면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똑같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을 가득 메운
하얀 눈가루 눈가루...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 가득 뿌려져 있는 듯 했다.
이러다 눈 앞이 모두 하얗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한 통 (0) | 2012.02.20 |
---|---|
이재무...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0) | 2012.02.13 |
이재무... 겨울나무로 서서 (0) | 2012.01.17 |
김지하... 지혜 (0) | 2012.01.12 |
김용택... 첫눈 (0) | 2011.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