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고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아내

                                      윤수천

 

아내는 거울 앞에 앉을 때마다
억울하다며 나를 돌아다본다
아무개 집안에 시집 와서
늘은 거라고는 밭고랑같은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뿐이라고 한다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모두가 올바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슬그머니 돌아앉아 신문을 뒤적인다

 

내 등에는
아내의 눈딱지가 껌처럼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잠시 후면
아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딱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환하도록 문지르고 닦아
윤을 반짝반짝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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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씩, 혹은 수십년씩 같은 사람하고 함께 지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마는...

참 희안하고 오묘한 사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라는 것이요...

그 묘한 인연을 재미있게 쓴 두 편의 시입니다...

'집으로 가는 출구' 를 찾지 못해 밖을 헤메다 고장난 가로등처럼 길에서 울고 섰는 남편과

'발딱 일어나 구석구석 닦아놓을...' 아내의 두 장면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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