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일 (雪日)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했을까?
내 존재의 의미를,
눈(자연)의 고결함을,
우리 생의 은총을,
사랑의 섭리를...
가치있는 삶의 주제들을 나열하면
이 몇 가지 쯤이 될 것이다.
살다보면 중요한 순서야 그때 그때 정해지겠지만
지금 내가 어디쯤일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디쯤'이 될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우리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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