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소식
도종환
날이 풀리면 한번 내려오겠다곤 했지만
햇살 좋은 날 오후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물 묻은 손 바지춤에 문지르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하듯
나 화사하게 웃으며 나타난 살구꽃 앞에 섰네
헝클어진 머리 빗지도 않았는데
흙 묻고 먼지 묻은 손 털지도 않았는데
해맑은 얼굴로 소리 없이 웃으며
기다리던 그이 문 앞에 와 서 있듯
백목련 배시시 피어 내 앞에 서 있네
몇 달째 소식 없어 보고 싶던 제자들
한꺼번에 몰려와 재잘대는 날
내 더 철없이 들떠서 떠들어쌓는 날
그날 그 들뜬 목소리들처럼
언덕 아래 개나리꽃 왁자하게 피었네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못 했는데
어어 이 일을 어쩌나
이렇게 갑자기 몰려오면 어쩌나
개나리꽃 목련꽃 살구꽃
이렇게 몰려오면 어쩌나
..........................................................................
남녘에서의 꽃소식에 마음이 서둡니다.
바알갛고, 하얗고, 노랗게 펼쳐질 꽃잔치를 준비하려면
손도 씻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해야하는데
눈도 씻고, 마음도 닦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이렇게 몰려오면 어쩌나?
'명시 감상 1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신...살구꽃 (0) | 2009.04.13 |
---|---|
오세영... 4월 (0) | 2009.03.31 |
이상국...국수가 먹고 싶다 (0) | 2009.03.30 |
김기림... 바다와 나비, 유리창과 마음 (두 편) (0) | 2009.03.20 |
한용운....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0) | 2009.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