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에서 국수를 먹다 


                                   이상국


봉평에서 국수를 먹는다
삐걱이는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 그릇에 천원짜리 국수를 먹는다
올챙이처럼 꼬물거리는 면발에
우리나라 가을 햇살처럼 매운 고추
숭숭 썰어 넣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국수를 먹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
또 어디선가 살아본 듯한 세상의
장바닥에 앉아 올챙이국수를 먹는다
국수 마는 아주머니의 가락지처럼 터진 손가락과
헐렁한 티셔츠 안에서 출렁이는 젖통을 보며
먹어도 배고픈 국수를 먹는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과
흙 묻은 안부를 말아 국수를 먹는다
.......................................................................

어디론가 떠나는 길,
그 길 위, 일상의 풍경이 새롭게 혹은 낯설게
다가서고 또 지나간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던 길 위에선
내 그림자를 만나는 일도 흔치않다.


용기는 바닥에 붙은 발바닥을 한걸음 떼는 일이라던데,
이 자잘한 용기조차 호기롭게 부려보지 못했다.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플라타너스
꼭 한 뼘씩의 여유로움을 선사하며 멀어진다.


사뿐히 차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가볍게 인사를 건낸다.
잠깐 다녀오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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