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신용목
학미산 다녀온 뒤 내려놓지 못한 가시 하나가 발목 부근에 우물을 팠다
찌르면 심장까지 닿을 것 같은
사람에겐 어디를 찔러도 닿게 되는 아픔이 있다 사방 돋아난 가시는 그래서 언제나 중심을 향한다
조금만 건드려도 환해지는 아픔이 물컹한 숨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가 서둘러 혀를 데인 홍단풍처럼 또한 둘레는 꽃잎처럼 붉다
헤집을 때마다 목구멍에 닿는 바닥
눈 없는 마음이 헤어 못 날 깊이로 자진하는 밤은 문자보다 밝다 발목으로는 설 수 없는 길
별은 아니나 별빛을 삼켰으므로 사람은 아니나 사랑을 가졌으므로
갈피 없는 산책이 까만 바람에 찔려
死火山 헛된 높이에서 방목되는 햇살 그 그 투명한 입술이 들이키는 분화구의 깊이처럼
허술한 세월이 삿된 뼈를 씻는 우물
온몸의 피가 회오리쳐 빨려드는 사방의 중심으로 잠결인 듯 파고드는 봄 얼마간
내 아픔은 뜨겁던 것들의 목마름에 바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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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된 수백명의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음이,
이 땅의 어른임이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한동안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고개 숙여 다시 그들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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