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罷場)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문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켤레 또는 조기 한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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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길


'얼마나 가야 해요?'
혼잣말하듯 맥없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을 주워


'금방이에요'
하고 받았다


하얀 거짓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가에 하얀 웃음이 번진다.


너도 그리고 나도
굽이굽이 돌아
여기까지 왔음을 알기에


조금 가벼워진 걸음을
다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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