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당신
권지영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모든 이야기가 당신이 됩니다.
차창 밖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되었다가
마른 잉크의 속삭임이 담긴 우체통이 됩니다.
서서히 나타나는 별의 안부에 가벼워지는 나는
당신과의 기억 속을 날아가는 나비가 됩니다.
나의 안테나는 아스팔트에 눅눅한 전파를 보내고
느리게 가는 시계와 마주 앉아 벽이 됩니다.
하나, 둘 어스름 속에서 피어나는 불빛이 당신이 되고
탁자 위에 피어나는 커피 향이 됩니다.
다가오는 발자국이 당신이기를
카페 문에 달린 맘 급한 손잡이가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만큼 더디게 머물러주기를
오래되고 낡은 의자가 됩니다.
.................................................................................................
바싹 마른 가지가 뚜욱 부러지며 남긴 공허한 소리,
그 소리가 맴돈 자리에 단단한 옹이가 박힙니다.
한동안 잊었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립니다.
비바람이 머물다 간 잎새에 매달린 물방울,
그 습기가 두꺼운 나무 껍질 틈새로 스며 푸른 이끼가 자랍니다.
한살이 든든히 견딜 푸른 옷입니다.
'명시 감상 7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률... 스미다 (0) | 2019.12.09 |
---|---|
윤수천... 고향은 (0) | 2019.07.05 |
윤동주... 십자가 (0) | 2018.10.23 |
김승희...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 (0) | 2018.05.23 |
정희성... 숲 (0) | 2018.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