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 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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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시간을 혼자 살아온 것 같아.'


길가의 작은 풀꽃의 한마디가
늦가을 쓰르라미 소리처럼 귓속을 갉는다.


'나도 그래'


그 한마디를 꺼내지 못하고 차라리 눈을 감는다.
아, 아프다.


운명처럼 혼자 살아온 시간을 모두 되돌릴 수는 없겠지.
우리 삶이 단 한 번뿐임도 거스를 수는 없겠지.


오늘따라 유난히 차고 시린 해가 지는
저녁 어스름 무렵
길 위에 서서
가녀리게 흔들리는 너를 위해
잠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릴 것이다.

겨울날의 동화


                           류시화


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여덟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살이었다 버릇 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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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는 것이 맞다.
믿음 위에 길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감사가 있다.


사실이다.


믿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걸 알아야 돌아앉을 수 있다.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나아 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지혜는 언제나
그 다음에 오는 것.
바람처럼, 소리처럼
때로는
이슬처럼, 비처럼, 눈처럼
그렇게 오겠다.

목욕탕에서


                        고형렬


따끔따끔한 탕 속에 들어가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앞에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사람은 지난 12월 전방에서 제대를 했다 대학에 떨어진 아이는 거울 앞에 앉아 다리 때를 밀고 있다 옆에서 아이 시원타 아이 시원타는 늙은이는 뼈가 녹는 모양이다 좋은 아침, 해가 나서 새벽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거리를 걸어갈 생각하니 즐겁다 욕탕 밖이 환하다(집은 봄처럼 창문을 활짝 열었겠지?) 천장 창 눈얼음이 햇살 이에 물린다 부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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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 찌릿한 냉기가
등짝을 타고 목덜미까지 오싹하게 오른다
콧잔등과 귀가 시린가 싶더니 볼따구니가 얼얼하다


냉기는 어깨와 팔뚝을 타고 손끝에 절절히 전해지고
종아리를 타고 발목과 발가락 끝까지 모든 말초신경에 전달된다.
이제 온 몸이 차다


이런 날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탕에
버석버석한 온 몸을 턱까지 푹 담그고
간질간질 녹이면 좋겠다.


떼루룩 떼루룩
눈두덩 타고 콧잔등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몹시 그리운 날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고정희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


남도 해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 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 앞에 드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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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함.

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일상.

하지만 모두가 귀할 수는 없지.

 

한 가지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어.

늘 애쓰고 마음 쓰고 먼저 행동하는 것이 맞지.

고민하고 주저하기 보다는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것이 맞지.

 

요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 기도라면,

항상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기 내서 일어서고

옳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맞지.

 

한 발 먼저 그리고 한 시 바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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