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꽃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몇 가지 번거로운 일을 겪고 나니
한순간에 보름이 지나버렸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어지럽게 낙엽이 흩어져 쌓이고 또 굴러가고...
길 가 여기저기 마른 나뭇가지도 부러져 떨어졌다.


어느 때부터인지 감각하지 못했던 시간, 그 속도...
만남과 헤어짐...
자꾸 예민해져가는 내 촉수가 반응한다.


입가에 맴도는 한 줄의 시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건 시간...'


가을 바람이 싸늘하게 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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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김종해 
   
한로 지난 바람이 홀로 희다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가을
서오릉 언덕 너머
희고 슬픈 것이 길 위에 가득하다
굴참나무에서 내려온 가을산도
모자를 털고 있다
안녕, 잘 있거라
길을 지우고 세상을 지우고 제 그림자를 지우며
혼자 가는 가을길
........................................................

모처럼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뒷동산이라도 올라가려는데
자욱한 안개가 발목을 잡는다.


며칠 계속된 안개로 새벽 공기가 영 마뜩치 않다.
그동안 자질구레하게 벌어진 일상의 때
안개 부옇게 내린 길가에
텁텁하고 매케한 냄새 자욱하다.


마스크라도 챙겨쓰고 잠시 나섰던 길,
운동화와 옷, 모자를 툭툭 털며
얼른 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개 자욱한 새벽 공기
그 속에 가득한 분진은


또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야 가라앉을게다.


우리네 삶이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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