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서른 한 살...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목마를 타고 저 하늘로 떠나버린 시인이 그립습니다...

그의 짧기만한 삶 역시 그리움으로 점철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움이... 개인의 사사로운 것이 되었든,

아니면 민족의 그 무엇이 되었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요...

 

바람처럼, 신기루처럼 스쳐지나가 잊혀져버리는 얼굴이 아니라면

남이 되기 싫어서라도

그리워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어느 가을 한녘,
천재 시인의 짧은 생애가 더욱 아쉽고...
그의 노래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명시 감상 1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은교... 사랑법  (0) 2008.09.29
용혜원...가을을 파는 꽃집  (0) 2008.09.25
서정주...푸르른 날  (0) 2008.09.17
이정란...악기 사러 가는 길  (0) 2008.09.16
김종목...기다림  (0) 2008.09.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