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 (火木)

                              송정란


민박집 뒷방 툇마루 아래 가지런히 쟁여둔 장작을 바라본다
불을 품고 얌전히 누워 있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장작 사이 벌어진 틈새들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토해낸다 캄캄한 구멍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보인다
욕망의 마른 혓바닥들이 꿈틀거리며 한꺼번에
기어나올 것만 같다 손만 갖다대도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다,
제멋대로 몸뚱이를 굴릴 것이다,
마음 속에서 수없이 무너지는 연습을 하며
뼈속까지 타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냥개비 하나의 작은 불씨에도
우르르 몸을 내던질 것 같은 마음의 장작들,
멀리 서울을 떠나온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곧 진눈깨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

 

변변히 가릴 것도 없이
구멍 숭숭 난 헌 거적
살짝 덮었으니

겨우 내
눈비 다 맞고
찬바람 맞고
꽁꽁 얼어붙었다

 

한 낮 맥 빠진 볕에 잠시 몸을 녹이고
겹겹이 쌓인 덕에 겨우 제 몸 하나는 건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단히 마른 심장 한 가운데 불씨

끝내 타오르는 순간이 오면
매서운 불길을 내뿜게 될 것이다.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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