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옛길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
두 볼이 날카로운 그 무엇으로 긁어내듯 따갑고 쓰라리다.
숨을 들이마시기가 무섭게 콧 속을 지나 목줄을 타고
서리발이 쫙 서는 느낌...
순간, 목줄이 어는 듯 아프고 목이 탄다.
뒷머리를 무엇인가가 콱 찌르고,
뜨끔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칠흑같은 어둠과 찬 공기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그보다 더 무거워진 발길을 옮기며
칼날같은 세찬 바람을 가르고,
영영 끝날 것 같지않은 아득한 시간을 제껴가며,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
산을 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길도 지나가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고,
언젠가는 산마루에 오른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 길,
죽어도 못 오를 것 같았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또 내려 간다.
다시는 못 오를 것 같던 길을 따라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런데...
지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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