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세영


꽃 피는 철에
실없이 내리는 봄비라고 탓하지 마라.
한 송이 뜨거운 불꽃을 터뜨린 용광로는
다음을 위하여 이제
차갑게 식혀야 할 시간,
불에 달궈진 연철도
물 속에 담금질해야 비로소
강해지지 않던가.
온종일
차가운 봄비에 함빡 젖는
뜨락의
장미 한 그루.
......................................................................................................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장미가 함박 피어있었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나를 채근하느라 힘을 다 뺐다.
무기력해진 내가 더 맥없어 보일 때 쯤,
화려한 장미의 향연이 펼쳐져 있음을 그제서야 보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향연도 끝날 때가 가까웠음을 가까이 다가가서야 알았다.
탐스럽게 피었다 싶은 장미에 손을 대자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핏빛 꽃잎...


내 맘 속에 열정은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가라앉혀야 할 때를 알게 된 것일게다.


다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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