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들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식구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몇 개
.......................................................................................

날이 풀리면서 유난히 어른들의 영면소식이 잦다.
지난 달, 이달만해도 벌써 여러차례 문상을 다녀왔다.

 
땅이 녹을 때 쯤이면, 땅의 기운이 변하는 환절기면,
어김없이 잦아지는 이별의 통보들...
참 희안하다.


할머니도 편안히 눈 감으신지 이제 일년이 됐다.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당신의 아들 곁으로
가신지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났다.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는 어수선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잘 계시리라.


내일 모레 정성으로 준비한 상을 차리고,
향불을 피워 먼 북천에서도 잘 계시도록 축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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