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밤의 연가
김종목
1
창(窓)밖엔 스산한 가을 달이 이제 막 오동잎에 내려와 한 자로 쌓인다. 포롬한 달빛이 눈부시게 흐르는 이 밤, 베개는 끝없이 높아만 가고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 속 명도(明度)는 저 달빛보다 더 밝구나. 시나브로 도지듯 눈시울에 걸려오는 너의 그 고운 옷고름 속 희디흰 율감(律感)이 밤마다 해일(海溢)이 되어 나의 몸을 덮는다. 만나면 헤어지는 이치를 내 어이 모를까마는 너의 그 비수(匕首) 같은 언약이 때로는 그믐달로 내 가슴에 박혀 푸르르 푸르르 떠는 것을 잊을 수가 없구나.
2
속절없는 세월도 바람지듯 떨어진다. 떨어져 멀리멀리 사라지듯 너도 또한 그러하냐. 그리움의 화살을 무수히 쏘다가 도리어 내가 맞아 쓰러지는 몰골이 처량하지도 않느냐. 저 무심한 달빛은 낭랑히 너의 얼굴로 떠오르지만, 마음 속 그 깊은 연(緣)줄은 차마 끊을 길이 없구나. 미나리 같은 풋풋한 너의 귀는 다 어디로 떠나 보내고 나의 하소연은 어이 듣지 못하느냐. 아니, 너의 그 불씨 같은 밝은 눈은 어디에 묻어 두고 깜깜하게 꺼진 나의 가슴을 녹 쓴 화통처럼 언제까지 놓아 두려느냐.
3
부질없는 짓이다. 달도 기울고 만지면 시꺼먼 먹물이라도 뚝뚝 묻어날 어둡고 막막한 토방(土房)은 그대로 감방이 아니냐. 삼백 예순 다섯 날을 열 번 백 번 곱하여 잠 못 든대도, 이미 떠난 마음을 어디에서 만나랴. 낙엽 지는 소리가 갈기갈기 찢어져, 밤마다 아픔으로 다가와 깊디 깊은 소(沼)를 만든다. 내가 누운 이대로 그대 있는 곳으로 낙엽지듯 떨어져 한 소절 음악이 되거나 달빛이 되거나 어둠이라도 되고 싶구나.
4
눈 먼 기별을 기다리는 가슴에 어두운 비가 내린다. 눅눅히 다가오는 그리움은 이제는 보이지 않고 내가 나를 면벽(面壁)하고 밤을 지샌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흐느낌은 다 가라앉고 오금이 저리도록 불타는 아픔도 이제는 다 삭아 손끝으로 헤집으면 그대로 재가 될 그림자만 남았다. 오로지 불념(佛念)에만 이내 몸을 맡기고 사리로 앉은 나의 마음도 ------, 아아 어느 새 제방(堤防)이 터지듯 강물이 되어 너에게로 끝없이, 끝없이 흐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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