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Ivan Ivanovich Shiskin (숲 속 In grove / 1865) 이 숲에 들어설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은 거덜 나 있었습니다. 마음은 사막처럼 모래먼지가 날리고 정신은 지칠대로 지쳐있을 때.... 숲은 그런 나를 받아주고,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하여 골짜기 물로 닦아주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주었습니다. 외로움 끝에 찾아오는 고요함을, 적막 끝에 다가오는 평화로움을, 두려움 끝에 찾아오는 맑은 생각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지친 그대가 이 숲에 오신다면 숲이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나뭇잎을 흔들어 박수를 치며 그대를 받아줄 것입니다. 분주한 마음으로 이 숲에 오셨다가 고요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대 혹시 사막에 계시지 않는지요? 한 손에 경전을 들고 일사분란하게 지도자를 따라가면서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어 다른 손에 무기를 숨겨둔 채 살고 있진 않는지요? 지켜야 할 수많은 계율이 있고 도처에 원수가 숨어 있으며 경쟁과 싸움을 피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면 그대는 사막에 있는 것입니다. 그대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그대가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도종환 시인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에서 아래는 레스카페님이 올리신 "이반 이바노비치 쉬스킨 - 숲의 화가 그림 여행" 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19세기 러시아 미술사를 읽다 보면, 상추 밭에 씨를 뿌리고 난 다음 며칠 지나면 빼곡히 올라오는 여린 잎들이 생각납니다. 대단한 화가들이 동시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데 이반 아이바조프스키가 ‘바다의 화가’라면 ‘숲의 화가’라는 말을 듣는 이반 이바노비치 쉬스킨 (Ivan Ivanovich Shiskin / 1832~1898)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언젠가 썼던 기억이 나는데, 러시아 화가들이 묘사한 숲을 보면 숲의 정령들이 그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호수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a lake / 1886) 호수 위로 맑은 하늘이 열렸습니다. 땅 위의 호수는 그 넓이만큼 하늘을 담고 있습니다. 맑고 투명한 가을 오후, 나지막한 언덕 너머로 지붕들이 고개를 내밀고 하늘과 산이 맞닿은 아스라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쉬스킨은 아버지가 좀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수성가한 상인이자 고대 유물 애호가였습니다. 아들이 고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볼가강 유역의 고대 불가리아 왕국의 유적지에 데려가곤 했는데 어린 쉬스킨의 머리 속에 깊고 넓은 숲이 자리를 잡는 기회였을 것입니다. (숲 속 In grove / 1865) 숲 속 얕은 곳에 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면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농기구를 들고 일터로 나가는 두 여인의 뒤로 햇빛이 폭포수처럼 숲에 내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숲도 환합니다. 걸어가는 여인들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12살 때 공립중학교에 입학한 쉬스킨은 미술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것은 좋았지만 그림에 대한 그의 정열이 오히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좁고 닫혀진 학교 생활의 틀에 자신을 집어 넣는 것을 싫어했던 그의 기질도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 나는 점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는 4년째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 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고민을 많이 하셨겠지요. 오랜 고민 끝에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좋은 아버지인가 ----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숲 속의 산책 Walk in a forest / 1869) 햇살 좋은 오후, 가족들이 숲으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자작나무도 보입니다. 앞서 가던 개는 나무에 앉은 새가 영 거슬리는 모양입니다. 아버지에게 딸이 무언가를 조르는 듯 합니다. 난처해 하는 아버지의 자세를 보면 아마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근처 지역의 스승 밑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가 모스크바 예술학교를 거쳐 상페테스부르그 예술아카데미 (Academy of Arts)에 입학합니다. 그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예술가 수준을 넘어섰다’ 였습니다. 대단한 재능을 보였던 모양입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여름 순례 코스인 바라암 섬에 자주 갔었는데,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그의 정열이 바라암 섬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 두 점에 녹아 들어 간 결과,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아르힙 쿠인지가 그린 ‘바라암 섬에서’ 라는 작품도 참 좋았죠. (핀란드만 근처 해안 Near coast of Gulf of Finland / 1888) 들꽃이 흐드러진 길 옆으로는 바다가 펼쳐있습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더 없이 좋아 보입니다. 살면서 저렇게 평화롭게 길을 걸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몇 번이나 남은 걸까 -----. 그림을 들여다 보다가 마음에 울컥 떠 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구도는 아리힙 쿠인지의 ‘크리미아 바다’ 라는 작품과 아주 닮았습니다. 물론 쉬스킨의 작품 연대가 10년 빠르지만요. 최우수상을 받은 그에게는 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정부의 장학금이 주어졌지만 쉬스키은 바로 떠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풍경을 그립니다. 이 점은 ‘바다의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와 똑같습니다. 상페테스부르그 예술 아카데미의 최우수 학생들의 전통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되면 언제고 한 번 추적해보고 싶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별걸 다 ------. (스위스의 너도밤나무 숲 Beech forest in Switzerland / 1863) 잘 생긴 너도밤나무가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도밤나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을 따라 갔습니다. 산에 가도 나무나 꽃 이름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이렇게라도 제목이 붙으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스위스의 산악 풍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말을 듣는 그의 작품 중 하나인데 스위스 여행 중에 10여장의 스케치를 했지만 나중에 회화로 완성 된 것은 3점뿐이었다고 합니다. (폭풍이 불기 전 Before a thunderstorm / 1884) 폭풍이 밀려 오는 하늘 저 편이 어둡습니다. 검은 색의 어두움이 아니라 어두운 청색이지만 화면 앞의 노란색 들풀이 주는 느낌과 대비되어 긴장감은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그의 독일 베를린과 뒤셀도르프, 드레스텐에서의 유학 생활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곳의 권위적인 교수들의 지도 방법이 그의 기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스러웠던 러시아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급기야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언어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프라하를 여행할 때는 생기기 돌았는데 주변에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숲 속의 양봉 Apiary in a forest / 1876) 물을 길러 오는 노인의 어깨가 구부정합니다. 생활의 무게가 한 짐 노인의 어깨 위에 내려 앉아 있습니다. 뒷 편의 오두막과 많지 않은 양봉통이 노인의 전 재산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숲은 그 안에 터전을 잡은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문득 지리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유학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전기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위스 쮜리히에서 에칭 기술과 펜화를 배우게 됩니다. 그의 에칭과 펜화 작품은 뒤셀도르프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쉬스킨이 남긴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내게 그 놀라운 그림을 그린 러시아 화가냐고 물었다’ 조금 잘난 척 하는 느낌이 있지요? (숲 가장자리의 꽃 Flowers on an edge of a wood) 숲이 시작되는 곳에 꽃 밭이 열렸습니다. 키 작은 꽃 들을 지나면 숲이 이어지지만 눈 길은 자꾸 꽃에 머물게 됩니다. 기분이 그런가요, 키 큰 나무들이 꽃 밭을 보호하는 울타리 같습니다. 귀국 후 그는 방랑파의 회원이 됩니다. 아카데믹한 화풍의 구속에 반대하는 젊은 화가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이 모임은 러시아 전역을 기차로 돌며 순회 전시회를 갖게 됩니다. 이 모임에서도 쉬스킨은 주목을 받는 화가였습니다. 거대한 녹색 숲처럼 건강하고 즐거운 그의 성격이 모임에 모인 사람들을 감염시켰습니다. (안개 낀 아침 Foggy morning / 1885) 숲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더불어 숲을 따라 흐르는 물도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밤 숲과 강을 이불처럼 덮어 주었던 안개들은 서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숲 속의 순간을 고요하게 잡았습니다. 머리가 맑아 지는 순간입니다. 잘 먹고 잘 떠들고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그였습니다. 시간이 되면 그는 펜화를 그렸는데 모임에 참가한 화가들은 그의 등 뒤에서 숨을 꼴딱거리며 그의 어깨 너머로 그가 그리는 펜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폴시에 풍경 Landscape in Polessie / 1884)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황량함과 여유로움이 동시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볏가리 같은 것인데 저렇게 쌓아 놓은 것을 뭐라고 하는지 어휘력 빈곤과 경험 부족의 저로서는 -----. 얼마 있으면 저런 벌판을 볼 수 있겠지요. 윗 단추 두 개쯤 풀고 벌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만경, 만경에 가면 저런 벌판이 있었습니다. (인디언 썸머 Indian summer / 1888) 봄 날 같은 화창한 날씨를 인디언 썸머라고 하는데 그림 속의 분위기는 만추의 저녁 무렵입니다. 세상이 붉게 타 올랐습니다. 짙은 단풍을 볼 때 마다 한 해의 끝은 저렇게 화려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 해의 끝 만 그럴까요 ----. 물도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싣고 흘러갑니다. 그의 회화 기법은 자연에 대한 분석적인 기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끝 없는 숲의 형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몇몇 평론가들은 색깔이 입혀진 그림이지만 생명력이 없다는 평을 합니다. 생명력 ---? 평론가들이 말하는 생명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던 쉬스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완벽하게 정리된 작품들을 완성해 갑니다. (한 낮, 모스크바 근처 Noon, view near Moscow / 1869) 아, 정말 장쾌한 풍경입니다. 화면의 3분의 2를 하늘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빛으로 꽉 찼습니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길은 황금색 벌판 사이로 끝없이 흰 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멀리 뻗어 있는 길만 보면 발을 멈추는, 눈길을 고정 시키는 병이 이 작품을 보면서 여지 없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 ‘환희의 송가 (Song of joy)’ 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렇죠, 환희의 송가가 어울릴 법한 작품입니다. ( 전인 미답지 Backwoods /1872) 넘어져 있는 나무들 위로 이끼가 내려 앉았습니다. 나무 잎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한 쉬스킨의 공력이 놀랍습니다. 그의 별명이 ‘숲의 황제’ ‘ 외로운 참나무’ ‘ 늙은 소나무’ 였다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늙은 소나무는 아마 나이 들어서 얻은 별명이겠지요? (시골집 마당 Country courtyard) 화면의 대부분이 황토색입니다. 쉬스킨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리에게도 편한 정경입니다. 시골 안마당은 어딜 가도 같은 모양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다차라는 주말 별장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참 부러운 문화인데 쉬스킨의 많은 작품이 다차에서 완성 되었습니다. (북쪽 In the North wild / 1891) 차가움과 고요함 그리고 쓸쓸함이 눈을 뒤집어 쓰고 서 있습니다. 달 빛이 비치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북쪽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입니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듯이 쌓인 것은 눈이 아니라 세월 속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생겨난 그리움입니다. (겨울 Winter / 1890) 처음 이 작품이 사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환한 낮과 밝은 계절을 그린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특이한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그의 인생의 겨울이 언젠가 찾아 봤습니다. 그는 두 번 결혼 했고 두 번 다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아이들도 그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남자로서, 부모로서 이 보다 더한 고통도 없었을 것 같은데, 그의 그림에서는 그런 슬픔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그림을 보자 쓸쓸한 그의 인생이 떠 올랐습니다. (폭풍 전의 숲 Forest before thunderstorm / 1872) 아직 폭풍의 징조는 보이지 않습니다. 폭풍을 직감한 새 한 마리가 목을 추기고 있고, 또 한 마리는 나뭇가지에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의 고요함입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러시아 풍경화의 기준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40여 년의 화가 생활 중 수 백 점의 회화와 수 천 점의 드로잉을 남긴 그는 ‘숲 속의 왕국 (Forest kingdom)’이라는 작품을 그리다가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숲 속 시내 Brook in a forest / 1880) 쉬스킨은 또 다른 러시아 풍경화의 대가 이삭 레비탄에 비해서 그 시대 대중들로부터의 명성은 떨어졌지만 숲의 묘사에 관한 한 최고였습니다. 특히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는 말이 필요 없는 권위자였습니다. 오늘도 러시아 숲 어디선가 쉬스킨은 숲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겠지요. потрясающе! Rain in an Oak Forest View in the Vicinity of St. Petersburg. 1856. In the Grove. 1869. Promenading in the Forest. 1869. Willows Lit Up by the Sun. 1860s-1870s. Gathering Mushrooms. 1870. Path in a Forest. 1880. Deciduous Forest. Misty Morning. 1885. Pine Forest. 1885. Oak-Trees. 1886. Mixed Forest. Shmetsk Near Narva. 1888. The Mordvinovo Oaks. 1891. Pond in a Old Park. Study. 1898. Grove by the Pond. Preobrazhenskoye. 1896. Landscape with a Woman. 1872. The Teutoburg Forest. 1865. View near Dusseldorf. 1865. Morning in a Pine Forest. 1889. Portrait of Ivan Shishkin Portrait of Ivan Shishkin by Ivan Kramskoy, 1880. Ivan Ivanovich Shishkin (Russian: Иван Иванович Шишкин, 25 January 1832 – 20 March 1898) was a Russian landscape painter closely associated with the Peredvizhniki movement. Shishkin was born in the town of Elabuga of Vyatka Governorate (today Republic of Tatarstan), and graduated from the Kazan gymnasium. He then studied at the Moscow School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for 4 years, then attended the Saint Petersburg Imperial Academy of Arts from 1856 to 1860, graduating with the highest honors and a gold medal. He received the Imperial scholarship for his further studies in Europe. Five years later Shishkin became a member of the Imperial Academy in St. Petersburg and was professor of painting from 1873 to 1898. At the same time, Shishkin headed the landscape painting class at the Higher Art School in St. Petersburg. Blue Autumn  / Claude Choe
출처 : 화실Emotion
글쓴이 : 은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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