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서광일


비닐봉지가 터졌다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
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딛혀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서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껏 밟는다

   
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
.........................................................................

그래, 가끔 우리는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도 모르고
무심코 그렇게 한다. 그냥 그렇게 간다.


하지만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우리 일상이
그렇게 큰 행복임을 항상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빚에 시달리다 초등학생 어린 딸과 아들을 죽이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비정한 아버지의 죽음이
뉴스거리가 되어 잉크내 펄펄 나는 신문에 실렸다.


뒤뚱거리다 넘어지더라도...
어쩌다 봉지가 터져 쏟아지더라도...
여기저기 멍이 좀 들더라도...
바퀴가 터져 굴러가지 못하더라도...


그냥 가다보면, 그렇게 가다보면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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