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자전거가 있는 바다


                                                         손택수

 

외갓집 소금창고 구석진 자리에 낡은 자전거 한대가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지만, 수리하면 쓸만하겠는걸.
아마도 나는 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쌩쌩 미끄러져 다녔을
은륜의 눈부신 전성기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논둑길 밭둑길로 새참을 나르고 포플러 푸른 방둑길 따라 바다에 이르던 시절,
그는 아마도 내 이모들의 풋풋한 젊은 날을 빠짐없이 지켜보았으리라.
읍내 영화관 앞에서 빵집 앞에서 참을성 있게 주인을 기다리다,
아카시아 향기 어지러운 방둑길로 푸르릉 푸르릉 바큇살마다 파도를 끼고 굴러다니기도 했을,
어쩌면 그는 열아홉 꽃된 처녀아이를 태우고 두근두근 내 아버지가 될 청년을 만나러 가기도 했으리라.
바다가 보이는 풀밭에 누워 클레멘타인 클레멘타인,

썰물져 가는 하모니카 소리에 하염없이 젖어들기도 하였으리라.
그때 풀밭과 바다는 잘 구분이 되질 않아,
멀리서 보면 그는 마치 바다에 누워 즐겨 꿈에 젖는 행복한 몽상가로 보이지 않았을까.
첫사랑처럼 한 번 익히고 나면 여간해선 잘 잊혀지질 않는 자전거,
손잡이 위의 거울 먼지를 닦아본다.
거울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나를 품고 있었다는 눈치다.
턱없이 높은 안장 위에서 페달이 발에 잘 닿지 않는다고 툭하면 투정을 부리던 철부지 아이를,
맥빠진 앞바퀴 뒷바퀴 타이어에 바람 빵빵 밤 늦도록 소금자루 같은 달을,
태우고 비틀대던 방둑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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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비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던 기억이
바닷가 저편 바다안개 피어오르 듯, 새록새록 떠오른다.


널직한 논둑 길에서 아슬아슬하게 타다가
친구가 그만 뒤를 잡은 손을 놓쳐
모두 함께 도랑에 처박혔다.


나는 새로 산 친구의 자전거를 고장 내서,
친구는 집에 가면 혼날 일에
둘이 어쩔 줄 몰라하던 기억...


그렇게 마음 졸이고 있는데
둑방 위에 나타난 구세주!


고등학교 다니던 형님이 우리 머리통에 알밤을 한방씩 주고
30여분의 씨름 끝에 자전거를 고쳐냈고,
우리는 만세를 부르며 콩콩 뛰었다.


결국 나는 그날 이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

 

계속 힘차게 페달은 굴러 앞으로 나아가려면
첫째, 앞을 똑바로 봐야한다는 것!
아래를 보거나 뒤를 볼 필요가 없음을...


그리고, 둘째,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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