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산사(山寺)에서


                                                     김종목 
 

개울물 소리도 멎은 밤, 눈 오는 소리는 산란(山蘭) 피는 소리 보다 곱다.
이따금 순백(純白)의 선율로 내리는 눈이 법당 앞 댓돌 위로 소복소복 쌓이고,
스산히 씻기는 바람소리는 귀를 더욱 맑게 한다.
극락전을 돌아 동백 터지는 소리가 맑게 들리고 심중(心中)에
구겨 넣은 번뇌가 저절로 터져 한 장의 백지로 홀러내린다.
 가벼워진 마음에도 눈이 내린다.

그지없이 평온한 반야(般若)경이 빛나고 가슴 속 하나의 길이 뚫리는 지금,
내가 가 닿아야 할 견성의 불꽃은 손가락 끝마다 숯불처럼 뜨겁다.
오욕(五慾)이 후둑후둑 떨어져간 저 산 아래로 내가 버린 발자국 소리가 하얗게 빛나고,
깊이 잠 든 중생의 꿈이 서역(西域)을 돌아 저마다 부처님의 얼굴로 내려온다.
 곱게 단 동정 끝에 떠오르는 미소는 마음 속을 스쳐 어디로 가는가.

놋주전자에서 밤새 설설 끓는 솔잎차는 그대로 공양으로 올라가고,

이따금 떨어지는 적막은 정일품(正一品)이다.

뜰 아래로 내려 와 한 모금 축이는 입술에 스르르 감전(感電)되는 오도(悟道).
아 이 순간, 마음에 남은 한 장의 백지마저 날아가버리고 빈 공간으로 차오르는 법열(法悅)의 눈만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내리는구나.
......................................................................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豫報)다.
서울에 눈이 온다는 것은 가끔은 좋지 않은 뉴스거리라서,
설레기 보다는 긴장되는 분위기다.


날이 추워지는 것도 그렇고, 길이 막혀서도 그렇고,
온통 미끄럽고 지저분해져서 사고도 많아지니 그렇고,
회사며 학교엘 가야하는데, 여러가지로 성가셔지는 것 때문에도 그렇고...


눈이 온다는 것은 내게는 아직
바람결에 묻어오는 쌀랑하고 선듯한 느낌이 그냥 좋기도 하고,
어릴적 신나게 눈길을 헤치며 뛰놀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라 미소짓게도 하고,
이젠 이름도 희미한 누군가의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설레임이 남아있고......


언 나뭇가지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소리
먼 데서 따악- 따악-
들려 올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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