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
우리가 세상에 나오는 순서는 있어도 떠나가는 순서가 없다.
부모, 자식, 삼촌, 조카, 선배, 후배, 형님, 동생...
사실, 이런 구별은 세상에 나온 순서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어린 아이나 노인 이빠지 듯,
자꾸만 빈 자리가 늘어 나온 순서가 무색하다.
우리 사는 동안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
언제 가더라도 딱히 아쉬울 것도, 그리 안타까울 것도 없긴 한데...
그래도 영영 떠나고 나면
그 빈 자리의 공허함이 꽤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어찌됐든 헤어짐은 서글프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0) | 2011.09.30 |
---|---|
공석진... 갈대꽃 (0) | 2011.09.23 |
윤희상... 화가 (0) | 2011.09.16 |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 (0) | 2011.09.01 |
류시화... 여행자을 위한 서시 (0) | 2011.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