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喪家)


                          김종길


主人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았다.


우정 이웃 나들이라도 갈 만한
비 개인 봄밤의 안개와 어둠,
大門은 몇 그루 꽃나무가 지키고 있었다.


마루에선 손님들만이
主人 없는 술상을 둘러앉아
한가롭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들일 간 主人을 기다리듯이
손님들끼리 제법 흥겨웁게
서로 잔(盞)을 권하기도 하고 있었다
.........................................................

제사상 앞을 뒹구는

철모르는 아이를
얼른 일어나라고 나무랐다.

나즈막하지만 위협적인 목소리에
얼덜결에 벌떡 일어난 아이의 남은 분(憤)이
방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이미 저승으로 간 이나
지금 이승에 남은 이나
서럽기는 매 한가지.


아무 것도 가져갈 것 없었던 이를 추억하려
어쩌면 남겨진 것인지도 모르는
남은 이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자리

조용히 자리를 물려놓고
바닥에 떨궈진
철없는 분(憤)을 말끔히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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