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형기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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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 한 가운데서 죽을 고비를 넘고
살아 돌아온 한 젊은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죽는 것 보다는 낫다는 걸 알았단다.


저걸 알만큼 고통스러웠구나 싶어
가슴 아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살다 보면 종종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쳐야
겨우 한꺼풀 벗고 새로운 한 살이를 얻곤 한다.
하지만 그 한 살이도
늘 준비하고 구별하고 기도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몫이다.


삶은 결국 기꺼이 견디는 것이고
당연히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마땅히
살고 싶어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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