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이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아니, 버티기...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소리가 등줄기를 따라 흐르며 잦아든다. 숨소리도...
솨아아...꽃향기 흙비린내 뒤섞인다.
산듯한 봄바람이 흔들고 지나간 목줄기는 말라들어가고

송글송글 빗방울이 탁탁 튀어오르자

우수수 꽃 진다. 수북하게 쌓인 꽃잎 위를 다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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