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구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

꽁꽁 언 넓다란 늪지에
한발남짓 겨우 난 물길 따라
까맣게 점점이 내려앉은 물오리떼
한강 물을 통째로 얼린 매서운 한파의 칼바람을
미동조차 않고 가녀린 몸으로 오롯이 견디고 앉았다.
그래, 가끔 살아있음이 고통이었던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언젠가 손끝으로 전한
잠깐의 온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찢어진 생채기가 아물고
시커먼 딱지가 내려앉고 새 살이 돋았지.
가슴의 못자국이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잊을만큼의 시간과
화해로 이끌만한 충분한 너그러움이 생겼지.
하지만 여전히 겨울바람은 매섭고
강물은 꽁꽁 얼어붙었고
손은 시리고 더 이상 온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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