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거름

 
                       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

그동안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렇더라


눈이 살짝 덮여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가
해가 나면 너저분한 길바닥이 다 드러나는 것처럼
창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면
떠다니는 먼지가 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아주 고스란히 다시 기억이 나더라
다행히 그 가슴시림은 아주 조금 덜어진채로...


그래 너나 나나 겪을만큼 겪었나?
다 좋은데... 그게 남으면 안되는데...
그게 말끔히 잊혀지면, 깨끗이 정리되면 좋은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벽보고 앉아
내 앞은 왜 이리 깜깜하냐고 통곡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냥 훌훌 털고 일어서서 나가면 되는데
이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걸어나가면 되는데
매일 아니 매순간이 새로운
이 시간을 즐기고 누리면 되는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그렇게 허술하더라고...


지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웃으면서 얘기할 꺼리도 안되는데
바보같이 이러고 산다.


이 좋은 봄 날.



'명시 감상 6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시영... 어머니 생각  (0) 2016.04.27
나희덕... 못 위의 잠  (0) 2016.04.15
길상호... 나무의 결을 더듬다  (0) 2016.02.04
한강... 효에게.2002.겨울  (0) 2016.02.02
함동선... 간이역 1   (0) 2015.12.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