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거름
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
그동안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렇더라
눈이 살짝 덮여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가
해가 나면 너저분한 길바닥이 다 드러나는 것처럼
창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면
떠다니는 먼지가 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아주 고스란히 다시 기억이 나더라
다행히 그 가슴시림은 아주 조금 덜어진채로...
그래 너나 나나 겪을만큼 겪었나?
다 좋은데... 그게 남으면 안되는데...
그게 말끔히 잊혀지면, 깨끗이 정리되면 좋은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벽보고 앉아
내 앞은 왜 이리 깜깜하냐고 통곡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냥 훌훌 털고 일어서서 나가면 되는데
이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걸어나가면 되는데
매일 아니 매순간이 새로운
이 시간을 즐기고 누리면 되는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그렇게 허술하더라고...
지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웃으면서 얘기할 꺼리도 안되는데
바보같이 이러고 산다.
이 좋은 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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