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춘다
김이듬
나는 춤춘다
춤추기 시작했어요
파도가 파고드는 검은 모래 위에서
아름다운 눈발은 전조였죠
폭우 속에서
우선 가슴을 옮깁니다. 마음이 아니라 말캉하고 뾰족한
바로 그 젖가슴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너무 일찍 감정을 가지죠. 다음으로
들린 발을 뒤로 보내는 겁니다.
뒷걸음질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직 스텝을 다 알지 못하고
몸을 잘 가눌 줄도 몰라요
내 몸은 내가 지탱해야 합니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치도록
발꿈치와 발꿈치가 스치도록 이동할 겁니다
모래에 뒤꿈치를 묻은 채 서있지는 않을 거예요 멈춤과 정적을 좋아하지만
추종하지는 않아요 무한을 봐요 파도가 회오리 치는
수평선 너머에 시선을 두는 겁니다 눈을 내리깔지 마세요
당신이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나는 왼쪽으로 갑니다
당신이 당신 편에서 동쪽으로 갈 때 나는 나의 서편으로 심장을 밀고 가요
가슴 맞대고 춤추는 겁니다
마주보지만 얼굴을 살피지는 말자는 겁니다
바다 바깥으로 해변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어깨 깊숙이 손바닥을 붙이는 겁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피하고 흥분하고 싸우기도 하듯이
나는 춤추겠다는 겁니다
눈 감고 리듬을 느껴봅니다
당신이라는 유령,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매순간 나를 석방합니다
나는 춤을 춥니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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